[도서] 뉴스의 시대: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The News: A User's Manual) Des petits idées



알랭 드 보통이 쓴 책으로, 2년 전에 JTBC 뉴스룸에서 저자가 직접 나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M6zaNqNeK0)
여기서 가장 좋았던 말은 "What I would argue is that the job of a really top quality broadcaster is not to report news so everyone fall asleep but to make the important, exciting and to make sure the whatever exciting is the most important."

생각보다 쭉쭉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워낙에 사고를 요하는 저자이고 하나에 대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이 큰 사람이라 어려울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구매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책 중 하나.

뉴스의 종류를 크게 정치/해외/경제/셀러브리티/재난/소비자 정보로 나누어 각각의 뉴스들의 현황을 설명하고, 그 뒤에 숨겨진 배경은 무엇인지 아주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결론에서는 이상적인 뉴스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저자 나름의 생각을 덧붙이고 있는데 전부는 아니지만 해외 뉴스와 재난 뉴스에 대한 생각들은 나 역시도 타당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지점이다.

역시나 인상 깊었던 문구들을 (굉장히 많기는 하지만) 아래에 적어보도록 하겠다.

#1.
뉴스는 우리에게 각기 할당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거나 흥미진진한 문제들을 찾아냄으로써, 그리고 이 더 큰 관심사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불안과 의심을 삼켜버리도록 용인함으로써 우리를 사로잡은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기근, 침수된 마을, 잡히지 않는 연쇄살인범, 내각의 사퇴, 내년 최저생계비에 대한 경제학자의 예측 같은 외부의 혼란이야말로 우리를 내면의 평온이라는 감각으로 인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2.
뉴스가 어째서 중요하냐고 묻는 건 뉴스가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하려는 게 아니라, 보다 자의식을 갖고 뉴스를 수용하려 할 때 얻게 되는 보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3
언론은 자신이 우리에게 매일 전하는 거들이, 몇 달 혹은 심지어 몇 년에 걸쳐 다듬어진 안목을 통해서만 그 진짜 형태와 논리 구조를 대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의 극히 일부만 뽑아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길 꺼린다. 따라서 많은 경우 단편적인 문장들보다 장별로 나뉜 이야기를 읽는 쪽이 더 현명하다는 점을 시인하는 데도 우물쭈물된다. 언론은 제도상 어쩔 수 없이 기사 아래 어딘가 있을 더 확실하고 포괄적인 것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기다리기보다 어떤 주제에 대해 미심쩍고 불완전할지라도 당장 감을 잡는 쪽이 더 낫다고 암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4. 
한 때 종교가 가졌던 것과 동일한 특권적 지위를 이제 뉴스가 점유하고 있다는 헤겔의 주장은, 뉴스와 종교가 각기 관장하는 지식 영역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 ... 하지만 뉴스와 달리 종교는 자신이 너무 많은 말을 한꺼번에 해버리면 우리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5.
뉴스는 스스로를 현실을 그려내는 권위 있는 초상화가라고 제시할지도 모른다. ... ... 뉴스는 어떤 이야기를 조명하고 어떤 이야기를 빼버릴지 선택하면서 단지 현실을 선택적으로 빚어낼 뿐이다.

#6.
늘 그러듯 대참사와 사악한 사건에 보도의 초점을 맞추면서도, 뉴스는 국가가 어려움을 헤치고 나아가며 진로를 정하는 데 필요한 작은 희망을 증류하고 응축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이따금 수행해야 한다. 뉴스는 사회의 악행을 폭로하고 그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사회를 돕는 한편, 선함과 용서와 분별력을 충분히 갖춘, 구성원들이 기여하기를 원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중요한 임무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7.
뉴스가 좀처럼 언급하길 꺼리는 것은 왜 세상이 그다지 크게 바뀌질 않느냐, 왜 거대한 권력과 자원이 우리의 어려움을 한 방에 해결하지 못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뉴스는 무척이나 절묘하게도, 어떤 결정을 어렵다고 일컫게 되는 진짜 이유로는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 대신 뉴스는 현재 진행중인 모든 문제들이 그저 엄청난 게으름과 어리석음 혹은 악의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지적이고 독창적인 누군가가 비교적 단호하게 그냥 몇 걸음만 내디뎠으면 해결될 수 있었다고, 우리가 점증하는 분노에 휩싸인채 그렇게 추측하도록 놔둔다.

#8.
저널리즘적 의미에서 꼬투리 잡기란 권력자가 잠깐 방심한 상태에서 무심결에 말하거나 행한 것을 낚아채는 행위다. ... ... 이 뒤에는 저널리스트들의 무력한 분노가 자리하고 잇따. 귿르은 자기네 나라의 많은 것이 대단히 잘못돼 있다는 걸 알지만. 권력에 접근할 방법을 갖고 있지 않거나 혹은 관료제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하다.

#9.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눈에 신문은 사람을 심하게 오염시키는 것이어서, 그는 오로지 완전한 문맹자와 무지렁이 프랑스인들만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보았다. ... ... 1870년대에 그는 그가 보기에 일반적으로 근대 세계가, 특히 신문이 조장하는 가장 멍청한 사고 패턴이라고 판단한 것들을 꾸준히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통상 관념 사전>이라는 책을 냈다. 

#10.
우리에게 필요한 해외 뉴스는 구체적인 것들에 더 끈질기게 매달리는 뉴스, 예술이 주는 교훈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임으로써 사건에 대한 우리의 흥미를 불타오르게 만드는 뉴스, 시인과 여행 작가와 소설가의 기예를 저널리스트가 전수받아 작성하는 뉴스말이다. 우리가 이 행성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비극을 그렇게나 일상적으로 태평하게 지나칠 수 없도록.

#11.
국가에게 통화는 끊임없이 순환하며 국가의 생명을 유지하는 매개체다. 통화는 미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데이터 중 일부를 암호화한 형태로 운반한다. 그 표본을 추출하는 것이 대규모 정부 금융연구소의 임무다. ... ... 이 수치 아래 놓일 수천수만 건의 회의, 근심, 곤경, 계략, 조기 출근, 해고, 새로운 기획, 신상품 출시와 그에 대한 낙담 모두 고작 두 자릿수로 묶여 설명되고 만다. ... ... 표준적인 경제학은 이런 성장 과정과 그때 필요한 마조히즘을 칭송한다. ... ... 즉 어째서 우리는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가난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수 없는지, 경쟁과 그로 인한 불안이 시장경제에서 왜 필요한지, 왜 완전고용 보장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드는지, ... ... 등의 질문에 대한 이유를 가르쳐준다. 

#12.
현재 주류 언론은 확립된 경제 제도 안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활동을 주로 취재한다. 또한 현재 벌어지는 일은 말해주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혹은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다. 뉴스가 의제를 만들어내는 한, ... ... 제한적인 문제 제기만 가능할 뿐이다. 

#13.
우리는 빼어난 셀러브리티들을 고작해야 소극적인 궁금증이나 엉큼한 호기심에 걸맞은 신비한 유령처럼 대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 ...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고 받아들여야 할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사례연구 대상으로 삼아 자세히 뜯어보고 엄밀히 분석해야 한다. ... ... 미래의 이상적인 뉴스 서비스에서는 셀러브리티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진정한 교육의 일환이 될 것이다. 그것은 존경하는 인물에게서 좀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자리로의 초대일 것이다.

#14.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삶의 의미를 회복시켜준다는 관념은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다. 여러 세기 동안, 권력자의 서재와 침실에 진짜든 그린 것이든 인간의 해골을 장식품으로 놓아두었는데, 이 해골은 시선을 확실히 끌 수 있는 곳에 놓여 있어서 권력자가 라이벌에게 시시한 복수를 꾀하거나 연인을 배반할 궁리를 하는 동안 그의 사고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끊을 수 있었다.

#15.
우리는 미래에 대해 인내심이 줄어들었고, 더 낙관적으로 변했다. 딱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건강 뉴스의 저변에 깔린 미래에 대한 전망은, 언젠가는 과학이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치료법을 발견하리라는 것이다.

#16.
예술과 유용성의 분리 상태에 저널리즘은 책임이 있다. 저널리즘이야말로 문화라는 수문의 맨 앞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 ... 저널리스트는 잘 숙고된 심리적 의제에 따라서가 아니라 출판, 영화, 미술관 산업의 홍보 계획에 따라 보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결국 비평 지면은 베스트셀러 순위나 영화 관객수 차트에 지배당하고, 다음에 무엇을 읽고 볼지 결정하는 데 오로지 대중성만이 가장 생산적인 기준인 양 돼버린다. 게다가 문화 저널리즘의 상당수는 비평가들이 수준 이하라고 간주하는 예술작품을 공격하는 데만 쓸데없이 열심이다. ... ... 하지만 이는 대중에게 진정 이로운 작품을 연결해주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는 더 유용한 임무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17.
해외 뉴스는 기행문학의 기법 일부를 차용하고 위대한 포토저널리즘의 힘을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마음속으로부터 '타자'를 인격화해내도록 돕는 한편, 전 세계에 만연한 배타적 편협함으로부터 빠져나오도록 해야 한다.

#18.
내면 탐구에 반대하는 뉴스라는 존재가 얼마나 질투심이 많은지, 그리고 우리 내면으로 얼마나 깊이 침투하기를 소망하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뉴스 공급자들은 우리의 뒷좌석에 스크린이 설치되길 바라고, 시계에 수신기를 설치하길 바라고, 우리 마음에 휴대 전화를 설치하고 싶어한다. 그래야 우리가 현재 일어나는 일에 늘 연결되어 항상 뉴스를 의식하도록 확실히 해둘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는 절대로 우리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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