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누구를 위한 뉴스였나: 기자 김상균의 방송뉴스 돌아보기 Des petits idées


먼저 다룬 책의 저자인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는 주로 지면을 많이 다루는 기자다. KBS, MBC, SBS와 같은 지상파 외에도 JTBC, TV조선, 채널A 등 종편도 다루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미디어 자체를 취재하는 기자이지, 취재한 내용을 방송에서 내보내는 업무는 담당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MBC방송 기자로 오랫동안 근무한 김상균 기자의 책을 읽어보았다.

원래는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를 빌리러 갔다가 얼떨결에 옆에서 발견한 책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근무했다는 이력에 이목이 집중되어 집어왔는데, 생각보다 잘 읽힌다. 되려 스위스인인 알랭 드 보통이 쓴 책보다 더 잘 읽히는 느낌이다. 물론 최근에는 글로벌화로 전반적인 저널리즘 취재 방식이나 재현 방식이 모두 엇비슷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국인이고 한국 언론과 홍보 활동을 했던 나로써는 되려 김상균 기자의 말이 더 와닿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방송의 속성을 역사적으로 짚어가며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까마득한 시절부터 기자를 했던 김상균씨가 본인만이 가진 인사이트를 통해 구체적 사건들에 대해 왜 보도했고 어떻게 보도하고자 했는지 사소한 과정들을 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방송 뉴스의 정석(이라기에는 너무 고급지기는 하지만)을 보는 느낌이었다. 직접 근무한 기자들이 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알 수 없어 객관적인 기자 행태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가 시도한 많은 일들은 의미있는 것들이 많았고, 시대를 앞서나간 것들도 많았다.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

역시나 책을 읽으며 재미있게 생각되었던 부분을 아래와 같이 쿼트를 따서 적어보았다.

#1. 추석 뉴스 포맷을 바꾸자!
1994년 귀국하자마자 저는 사회부장 일을 맡았습니다. ... ... 추석 날 지존파 살인사건을 특종했고, 그러면서도 명절에 '인육 먹은 뉴스'를 내보냈다며 온갖 욕을 다 먹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우리 명절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참 많이 한 때였습니다. 교통상황만 보도하는 명절뉴스에 너무 문제가 많아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 ... 미국에서 성인잡지를 들여와 국내판을 만들어 팔겠다는 뉴스가 뜨자 우리 사회가 갑자기 도덕사회인 양 나리를 피우면서 이를 막은 일이나. 일본에서 최고급 재료를 가져와 일본국수를 비싼 값에 팔려던 음식점 주인이 구속된 일 등은 지금도 머리에 숙제처럼 남아 있습니다. 한 사회의 지나친 '이중인격'은 양극화만큼 심각한 고질병입니다.

#2. 한국의 차별 문화
... 마지막으로 머리에 남는 말이 '차별'이라는 단어입니다. 방송을 하면서 저는 우리 사회가 '차별하는 데 세계적'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아주 다양하고 심하게 서로를 차별하는 것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방송이 이런 차별을 없애지 못하고 말았다는 아쉬움과 자책이 머리에 가장 오래 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방송만큼 이런 차별을 깨부수는 데 효과적인 매체도 없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온갖 핑계를 들이대면서 차별하는 것만큼 국가발전에 암적인 폐단은 없습니다.

#3. 민주주의를 위한 바른말
말끝마다 '나는' 하고 연설하는 대통령과 뉴스마다 '대통령은'하고 보도하는 방송을 매일 보면서 살아야 하는 국민들이라면 틀림없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국인들이 그렇게 말하듯이 방송뉴스에서도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어?", "정부가 잘못했어" 또는 "장관이 물러나야 해"와 같은 말투가 자연스럽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세상은 말처럼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입니다. ... 국민들 입말과 아주 다른 표현은 그만큼 방송뉴스에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4. 왜 방송기자들은 언어 순화에 앞장서야 하는가?
방송기자가 나서지 않으면 잘난 사람들은 절대 글이나 말을 바꾸는 일에 나서지 않습니다. 그건 무식한 사람들이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송기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이제 수동태는 영어에나 쓰는 말법으로 아예 버립시다. 원래 우리말은 능동형으로 써야 듣기 좋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5. 뉴스 프로그램명 바꾸기
... 편집회의 때 몇 차례 아침뉴스 프로그램 제목을 바꾸자고 의견을 냈습니다.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세계화 추세에 맞아 좋다는 반론마저 나왔습니다. ... ... 당분간 뉴스 제목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제가 맡은 사회부 일이나 잘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손석희씨가 하루는 저에게 찾아와 "아침뉴스 제목을 바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 ... "제 프로그램인데도 저는 아침뉴스 시작할 때 단 한 번도 뉴스 제목을 말한 적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는 그 때 손석희 씨가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심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6. 뉴스에서 찾는 한국의 정체성
문득 1980년대 어느 해인가 유네스코 프로그램으로 일본에 3주 동안 머물렀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일본방송 뉴스 시간에 나오는 음악소리가 아주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첫 부분에 일본 악기인 샤미센 소리가 들어 있었는데, 저는 정말 문화적 충격 같은 걸 느꼈습니다. 적어도 일본 방송뉴스는 음악만 들어봐도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7. 방송 뉴스의 문제
일선 기자들이 연합해서 만든 '방송기자연합회'가 올해 <방송뉴스 바로하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방송기자들이 되풀이하는 잘못을 '7대 문제'로 유형화했는데, 그중 마지막이 '관습적 기사작성'이라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무의미한 스케치 기사'입니다.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휴일과 휴가철, 그리고 명절의 모습이 스케치라는 이름으로 전파를 탄다는 것이었습니다. ... ... 이 책은 또 "날씨에 환장한 방송"이라는 노종면 기자의 말처럼 지상파 3개 사가 날씨 기사를 얼마나 많이 다루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 ... 그러면서 "한 방송사에서 날씨와 관련해 한 달 동안 무려 100여개의 리포트를 한 것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개탄하고 잇습니다. 더구나 일종의 재난방송인데도 "원인과 대책, 예방을 위한 점검사항 등은 별로 없고 대부분 유사한 화면들로 단순히 현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8. 국가 범죄
이재승 교수는 <국가범죄>에서 "한국은 일제강점기, 분단체제, 한국전쟁, 군부독재, 민주화 이행기 등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국가범죄의 박물관'이라 할 만큼 다채로운 국가범죄 목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만큼 우리 군대가 문제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말이지요.

#9. 신문뉴스와 방송뉴스
방송은 과거 신문에 비해 동영상을 제공하는 엄청난 전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를 이용할 기사에 대해서는 아주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늘 했던 불평이바로 "방송은 대포를 갖고 있으면서도 늘 칼을 가진 신문에 당한다"는 볼멘소리였습ㄴ디ㅏ. ... ... 우선 야당 출입하는 후배들과 이런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우리도 뉴스를 좀더 다양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신문에서 보는 가십, 해설기사 같은 것을 망라할 수 있는 그런 뉴스를 만들어보자고 말이죠.

#10. 드라마와 방송뉴스
2005년 문화방송이 제작한 드라마 <제 5공화국>에서 광주 발포 장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봤습니다. 바로 1980년 5월 20일 낮에 도청 앞 현장에서 장교 한 사람이 경비전화를 받고는 알았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크게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군인들이심니들에게 일제히 발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기자보다 PD가 훨씬 진상에 가깝게 표현하는구나!' 무엇이 언론이고 정도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11. '강간' 이라는 단어의 사용
요사이 우리나라 경찰청에서도 범죄시계 통계를 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방송에서 우리나라 살인에 대한 범죄시계 통계를 말하는데, 그전에는 10시간마다 일어났던 살인사건이 최근에는 7시간마다 일어난다고 문제 삼는 출현자를 봤습니다. 그런데 이 출연자는 성폭력을 비롯한 성범죄는 25분마다 1건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강간이라는 말은 아예 사라지고 대신 성폭력이란 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강간을 성폭력으로 부드럽게 바꾸어 부르면 그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12. 미국 언론사의 이데올로기화 과정
... 막강한 유대 언론과 로비 능력이 동원돼 이른바 '북한 때리기'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여기에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합세하고 무기업체들까지 뛰어들면 미국 여론은 하루아침에 뜨겁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대상은 곧바로 '악의 축'이 됩니다. 그것이 이라크이든 이란이든 북한이든 말입니다. 모두 다 이스라엘과 불편한 관계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3. 구정과 신정의 의미
우리가 지금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일제가 우리 말에까지 문화적인 침략을 해버렸기 때문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심지어 역사 시간에도 저희는 '한일합방'으로 분명히 배웠습니다. 나라가 망한 역사를 두 나라가 합쳤다고 가르친 겁니다. 강간당한 아녀자에게 서로 좋아 화간했다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만약 지금 우리가 독도를 옛이름 그대로 독섬, 즉 돌로 된 섬이라는 우리말로 불렀다면 일본이 이를 죽도로 바꾸고 자기네 섬이라고 우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겁니다.

#14. 리영희 선생
미국 기자 수백 명에게 증언을 들어 만든 책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를 보면, 미국 언론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무는 바로 '진실 추구'입니다. 리영희 선생은 이런 의무를 평생 온몸으로 실천한 참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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