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Journaux intimes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쓰지도 않고 잠만 자고 넷플릭스만 보고 공상에 빠져있었다.
뭐 글을 쓴다고 해서 엄청나게 나아지는 것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정리하는 개념에서 쓰려고 한다.

작년 7월인가 8월인가를 마지막으로 블로그 업데이트도 그만뒀고, 몇 일 전에 유튜브를 들어갔다가 내 번역이 최종 확인되어서 올라간 것을 보고 다시 블로그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 전부터 들었지만 막상 들어와서 작성하려고 한건 지난 번 쓴 글에 유튜브 번역 업데이트를 하기 위한 것이었지 뭐.

작년에 쌔빠지게 일하고 올 1~2월 프랑스에 다녀왔다.
France Télévisions도 다녀오고 몇몇 기자들도 만나서 일도 처리하고, 계약도 하고 많은 일이 있었다.

프랑스는 희안한 공간이다. 사실 프랑스라는 공간이 희안한게 아니라 항상 가족과 살다가 떨어지는 경험을 해온 공간이 프랑스밖에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친구 때문일까.
그런데 프랑스 외에도 다른 나라에서도 가족과 떨어져있었고, 남자친구도 한국에 있다 프랑스에 있다 번갈아가며 사는데 무엇이 정확한 원인이 되어 나의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모르겠다. 혹은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의 저 꼭대기에 있는 시간이라는 것때문에 내가 바뀌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작년이든 뭐든, 전반적으로 통틀어서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경험과 감정들이 몇 가지 있다.

1. 가장 먼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봤을 때 생기는 경쟁심이나 화가 많이 가라앉았다. 

겉으로 티는 절대 내지 않지만 나는 경쟁심이 굉장히 심한 성격이고, 나보다 잘하거나 혹은 못하는 사람을 봤을 때도 화가 나거나 경쟁심에 불타올라 혼자서 난리법석을 떠는 적이 상당했다. 사람은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그런 성향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나 좀 덜해졌다. 옅어졌다. 아마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휴학이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일까? 어떤 그룹 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은 일말의 안정감과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특수한 경험을 전해주고는 하지만, 그 어떤 그룹에서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구성원들에 의해 적극적인 인사이더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인간의 생은 정말 철저하게 변하는 것 같다. 내가 아직도 회사나 대학원에서 그 안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갔더라면 다시는 이러한 외톨이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외톨이라 하니 뭔가 부정적인 느낌도 없지 않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완벽히 혼자가 되려면 가족도 떠나야겠지만, 원래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크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간섭하는 성격들은 아니라 (특히 나에게는) 딱히 내 생이 그들과 과도하게 결부되어 있지도 않다. 대학원도 떠났고, 회사도 떠났다. 

사실 단순히 그 구성원들을 매우 정기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들과의 공통분모가 시간이 갈 수록 점차 사라지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들에게 올바르고 중요한 가치들이 내게는 더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면서 오는 괴리가 나와 그들을 진정으로 분리하고, 뭐라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flâner랄까, 저 멀리 위에서 나와 남들 모두를 바라보게 되는 효과가 가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사회 주요 이데올로기와 패러다임이 나에게 요구하고 내가 특정 지위를 가지게 되었을 때 요구하게 될 것들을 살펴보고 이것들을 내가 견디면서 그 삶을 살 수 있을지 좀 더 객관적으로, 보다 투명한 마음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된다.

2. 이렇게 동떨어진 위치에서 있다보니, 정말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많이 사색하게 되었다.

난 보여지는게 중요한 사람이라, 고등학교 때도 그러했고 대학 때도 마찬가지로 남들의 시선을 정말 단 한 순간도 고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남들의 범위나 크기도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나름대로 그 범위를 최소한으로 하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척'이라도 많이 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직업, 옷차림, 태도 등 어느 하나도 자연스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물론 내가 남들에 의해 조종되는 인형이라는 뜻은 아니나,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남들의 시선을 신경썼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면서부터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생각을 해왔고, 대학원 때도 사고를 이어가기는 했으나 작년 여름부터 끊임없이 이어진 업무로 인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다시 한 번 남들의 시선에 노출되는 경우가 의도치 않게 생겼다.

이제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삶을 돌아보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사실 휴학을 하게 된 계기는 정확히 같은 이유에서는 아니었으나 난 후회하지 않고 되려 작년에 힘들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어서 즐겁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종종 발걸음을 하고, 다른 학교에서 청강하고 있기 때문에 타교 학생들도 만나긴 하지만 그들과 어떤 소통이 오고가는 것은 아니며 본교에 가도 사소한 생활 이야기(기존에 해오던 수다와 별반 다를 바 없는)에 대화가 그치기 때문에 정말 소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어느 곳에 속하지 않은 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낄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특히 불안감을 극도로 꺼리는 내 입장에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건만, 생각보다는 잘 지내고 있다. 아직 한 달 갓 지난 상태에서 잘지냈다고 확정짓기는 힘드나, 이제 막 진실된 사고를 시작하고 있는 단계에서 상당히 즐겁다.

3. 위의 두 가지가 바뀌다 보니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우위에 변동이 생기고 있다.

크게 부연설명할 것은 없지만 돈인지, 지식인지, 간단하게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 사이의 고민에서 시작해서 보다 더 세밀하게 들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은 무엇이며 미래에 내가 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밸런스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를 알아보고 있다.

프리랜서도 해봤고, 회사원도 해봤고, 학생도 해봤다. 선택만 남았다. 그런데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쉬운 것 하나 없고 각자의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하기가 힘들다. 아마 내 생각에는 왔다갔다 하지 않을까 싶다.

4. 진짜 공부를 하려고 한다.

멋에 들려 불어책 영어책을 끌어안고 보여주기식 공부를 하는 것. 정말 창피하고 개인적인 블로그에 밝히기도 민망하지만 나는 그래왔다. 난 남들에 비해 언어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고, 들이는 공 기반에는 타고난 감도 어느정도 있어 보여주기에 나쁘지 않은 언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사실 남들도 개인차는 있지만 이정도는 다 한다는 사실을.

언어 공부도 해오고 있지만 (대학원) 공부도 마찬가지로 진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어떤 주제를 선택해서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과학적 연구라고 할 수 있는지, 타인과 구별되기 위해서(어쩔 수 없이 살아남아야만 하는 학계에서)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는지 말이다. 이런 것들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5. 말을 막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욕도 줄이고 (아직까지는 사실 노력보다는 인식에 그치고 있는 중이다.) 말도 예쁘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예쁘게'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클리셰적인 뜻보다는 말의 무게를 인지하고 아무렇게나 던지는 문장들을 줄여간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막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니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이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을 놓고 나에게 진실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나도 아직까지 내 스스로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타인 앞에서 내 과오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털어놓는 것도 아직까지는 상당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지금은 내가 가졌던 허세끼를 인정하고 고쳐가려고 (사실 고치지 않으면 남보다는 내가 더 피곤하다..) 노력하는 부분이 칭찬해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모든 부분에서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아직 나는 젊고 원하는 것도 많은 까닭에 그러기는 힘들다.
그래도 성인이 된 이후 내가 이렇게 큰 변화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살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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